경남영상자료관
리플렛

경남영화이야기

[시네크리틱] <작은 하루>(2023, 김진)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4-08-18


<작은 하루> : 잃어버린 뒤에 만나게 되는 것


정지혜(영화평론가)


아침 일찍 삼천포를 떠나 이제 막 창원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은아(김송은). 휴대전화로 친구 연주(황민지)와 연락을 주고받고 연주가 일을 마칠 때까지 근처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 사이였을까. 휴대전화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휴대전화가 없으면 연락도, 결제도 불가능하지 않은가. 휴대전화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살아가는 현실을 생각해 보면 난감하고 아찔한 일이다. 그렇게 은아는 한순간 자신의 좌표를, 가야 할 길과 방향을 모두 잃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은아의 창원행은 출발부터 약간의 긴장과 얼마간의 도발이 서려 있었다. 연주와의 짧은 문자 대화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창원은 그녀에게 낯선 도시이자 초행길에 가까워 보인다. 집에는 창원이 아니라 서울에 다녀오겠다고 거짓말까지 한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휴대전화까지 잃어버렸으니. 은아의 긴장은 배가 된다.


그런데 김진 감독의 <작은 하루>는 이러한 상황 앞에서 의외로 담담하고 의연한 자세를 보인다. 공중전화를 이용해 자신의 휴대전화를 주웠다는 사람과 가까스로 통화를 마친 은아가 그를 찾아 나서는 일련의 과정은 작은 소동극에 약간의 미스터리와 얼마간의 허망한 코미디극의 터치를 더 한다. 그러던 영화는 은아의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는 사람을 찾는 과제에서 떨어져나와 한숨을 돌리는 여유까지 보인다. 자유로운 로드무비로 흘러가는 것이다. 약속된 정해진 장소, 정확한 지표와 방향으로 상징되는 세계인 휴대전화를 잃어버림으로써 오히려 은아는 어디로든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영화는 ‘휴대전화 찾기’라는 단일한 목표에 고정될 법한 은아의 시선을 돌려세워 낯선 거리로 향하게 한다. 놀이터를 거쳐 시장통으로, 그곳에서 만난 아이와 NGO 청년, 그들과 나눈 짧은 대화와 일화까지. 그 순간 영화는 휴대전화를 찾아야 한다는 강렬한 목적의식에 휩싸이기보다는 그런 일이 있느냐는 듯, 그런 일은 잠시 잊자는 듯, 엉뚱한 얼굴을 하고 엉뚱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이 영화가 그리고 은아가 그러하다.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생각과 감정에 압도돼 극도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 도리어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잠시 잊거나 그 현실에서 잠시 떨어져 나와 주변의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만난 한 여인과의 짧은 대화는 은아를 완전히 다르게 움직이게 한다. “휴대전화가 없으니까 직접 찾아가야지. 서로 애타게 찾고 있으면 만나게 되지 않을까?” 정작 찾아야 할 대상은 휴대전화가 아니라 친구라는 이 말 앞에서 우리는 무엇에 맥없이 사로잡혀 있는가, 정작 잊고 있는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다. 그렇게 지표도, 방향도, 정보도 없이 무작정 친구를 찾아 어느 동네로 들어선 은아는 여성 혼자 걷는 밤길 위에서 낯선 타인들이 만들어 내는 소란과 발소리에 또다시 긴장한다. 스릴러적 냄새가 풍기는 듯하다. 그러던 영화는 마침내, 은아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그 만남의 방식을 통해 우리에게 안도와 웃음을 전한다. 불안, 긴장, 낯섦의 감각은 예상외의 반전, 귀여운 상상, 희극적 요소, 극적 타결과 맞물려 일순간 사그라드는 것이다. 새벽부터 이어졌을 은아의 긴장과 그것을 지켜보던 관객의 그것이 한꺼번에 스르륵 녹아내린다.


<작은 하루>에는 여러 장르의 흔적이 엿보인다. 과도한 설정, 극적 드라마, 극악한 사태의 전개 없이도 가능할 수 있는 이 담담한 긴장, 그것으로 진행되는 하루. 그 하루의 끝에서 은아는 얼마나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을까. 절대 작지 않은 은아의 하루를 충분히 함께 따라 걸어본 것 같다.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