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영상자료관
리플렛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3-12-08

Q. 감독님, 안녕하세요. 경남영상자료관을 찾아주신 분들게 감독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거제에서 거인로컬크리에이터 협동조합은 운영하며 영화와 영상을 촬영하고 제작하고 있는 있는 문종석이라고 합니다.
Q. 최근 김해시민영화제 <김씨네>에서 이삼우 감독님의 <소주 한잔 했다고 하는 얘기가 아닐 세>라는 작품을 봤어요. 엔딩크레딧에 감독님 이름이 있더라고요. 촬영감독으로 참여하신 거 죠?
네, 촬영감독으로 참여했어요. 극단 예도의 이삼우 감독님과는 예전부터 연이 있어 이번 작품도 제가 촬영으로 참여했죠.
Q. 감독님께서는 영화를 언제 처음 시작한 거죠?
사실 저희 아버지가 사진사였어요. 필름카메라나 캐논 eos5 같은 카메라를 가지고 놀고 했었 어요. 그 영향으로 사진을 먼저 배웠죠.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가 인문계여서 예체능 관련 동 아리가 거의 없었는데, 사진에 관심이 많았던 선생님이랑 저랑 같이 사진반 동아리를 만들어 서 여기저기 찍으러 다녔어요. 1학년 때부터 사진을 찍으러 다니다가 선생님께서 영화 한번 찍어볼래라고 제안하셨어요.
재밌을 것 같아서 vx2000 카메라로 <학교종이>라는 단편영화를 만들었어요. 그 작품이 제 첫 작품이죠. 처음 만든 영화라 아무런 정보 없이 만들었는데 그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에서 심사위원상을 탔어요. 제 작품이 2, 3위 정도 했던 것 같은데 처음 만든 영화가 상을 받 아서 나 좀 재능 있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웃음)

Q. 처음 만든 작품 <학교종이>에 관해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신다면요?
그게 소재가 교내 따돌림이었어요. 따돌림당하는 친구를 바라보는 시선에 관한 영화였어요. 사실 따돌림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보편적인 주제잖아요. 이야기 보단 촬영에 조금 더 신경 써 서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상을 받았던 게 아닌가 해요.(웃음)
그때 1등 했던 팀이 선화예고 동아리 팀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이었는데 제목이 아직도 기억나 요. 이라는 작품인데 너무 신선한 거예요. 신을 개로 표현하는 것도 신기했고, 그것도 애니메 이션으로 나랑 나이가 비슷한 친구들이 풀어낸 다는 게 너무 신기했죠. 그 작품을 만든 친구 가 청소년영화제에 출품된 영화들이 너무 식상하다고 말하는 걸 들었어요. 맨날 따돌림과 학 교폭력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하는 거예요. 저는 그날 영화제에 의기 당당하게 갔 는데 그 말에 부끄러워졌어요. 그래서 그때 제대로 한번 해보자 해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인문계를 오전에만 다니고, 오후에는 하자센터라는 곳에 다녔어요. 지금 보면 대안 학교라고 봐야 될까요?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 오후에는 하자센터로 갈 수 있도록 승인해 줘서 그쪽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습작도 만들어보고 했었죠.
Q.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영화활동을 계속 이어나갔나요?
졸업하고 대학을 영화과로 지원했어요. 제가 처음 만든 작품 <학교종이>를 좋게 봐주셨던 한 교수님께서 본인이 있는 과로 수시를 지원해 보라고 하셨어요. 제가 그 교수님만 믿고 그 학교에 수시를 넣어서 한서 대학교 영화연출학과(영화영상학과)에 다니게 되었죠. 그땐 정말 눈만 뜨면 영화 찍던 시절이 었어요. 대학을 공부하려 간 게 아니라 영화 찍으려고 갔다고 할 정도였어요. 4년동안 70편을 넘었던 것 같아요. 졸업전까지는 다작으로 기록을 세웠지만 첫 작품 이후 상복은 없었어요. (웃음)
충무로에 한 3년 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대학 졸업할 당시에도 고민이 많았어요. 연출보단 촬영 위주로 흘러가는 작품을 썼었거든요. 작품은 많이 하고 싶은데 글 쓰는 재주는 없는 것 같고, 촬영을 하려면 작품은 있어야 하니까 이미지 위주의 영화를 많이 찍었던 것 같아요. 교수님들이 제 영화를 보더니 보여주기식 영화를 찍는다고 하시기도 했죠.(웃음) 그래도 어떻게든 졸업하고 현장 촬영부에서 스태프로 일했는데 워낙 힘들기도 했고, 그 당시 특정 대학들이 감독을 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그만뒀죠. 고민을 하다 그때 당시엔 제 영화를 못 찍겠다 싶었어요.

Q. 영화를 그만두고 난 뒤에 거제로 정착하게 된 건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영화를 계속할지 말지 고민하던 시기에 거제에서 유자농장을 하고 있었어요. 아버지께서 영화 그만두고 농장일 하라고 거제로 오라고 해서 바로 거제로 갔죠.
Q. 그럼 본격적으로 거제에서 영화 활동을 시작한게 언제부터 인 가요?
제가 거제에서 한 2년정도 귀농생활을 했어요. 사실 거제에서 정착하게 된 직후에는 영화를 거의 끊다시피 살았어요. 아버지랑 같이 사업하며 지냈었죠. 2년 정도 지나고 나니까 언젠가부터는 문화생활이 너무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지인에게 하소연을 하였더니 ‘극단 예도’를 소개해주더라고요. 그 지인이 극단 예도의 고문이었어요. 연극에 관심이 많았던 건 아니었지만 대학교 4학년 마지막 워크숍을 영화가 아닌 연극 연출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연극 은 영화에 비해 배우와의 호흡을 길게 가지고 가야 했던 게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했거든요. 그때가 생각나서 예도에 들어가게 되었죠.
극단 단원으로 들어가서 틈 날 때마다 활동할 계획이었어요 처음엔. 극단 단원으로 들어갔 지만 제가 연기는 전혀 못하니까 연출로서 조금씩 활동하기 시작했죠 그때 마침 극단 대표님 이 영화를 해보자고 하는 거예요. 제가 영화 현장 경험도 있고 하니까 한 10년 만에 영화 현장에 참여했죠. 그때 당시에는 지방에서 독립영화를 만든다고 하면 주변에서 다들 ‘영화촬영’이라는 말에 관 심을 가져주기도 했어요.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기도 했고요. 그때 찍었던 작품이 <비밀>인데, 오랜만에 현장에 가니까 너무 재밌는 거예요. 옛날 생각이 나기도 했고요. 그때부터 영화를 계속해서 찍기 시작했어요. 즐거웠던 기억이 많아요. 웨딩샵 사장님이 크랭크인 파티를 무료로 열어준 적도 있었어요 .(웃음) 각종 언론, 방송에서 취재를 하러 오기도 했고, 지역 아역배우 오디션에 많은 분들 이 참여했었죠.
Q. 거제에서 찍은 첫 장편 <선녀씨 이야기>도 극단 예도와 함께 찍은 작품이라고 들었어요.
네 맞아요. 그 작품 촬영하는데만 1년이 걸렸어요. 프리 프로덕션단계와 후반작업까지 포함해 거의 2년 정도 더 걸렸네요. 이 작품이 사실 연극으로는 정말 훌륭하고 유명한 작품이거든요. 저희가 만든 영화는 그에 비 하면 만족스럽진 않아요 사실.(웃음) 촬영 과정 내내 촬영 감독이 많이 바뀌기도 했고, 스태프 들끼리 서로 부딪히면서 진행한 작품이거든요. 이 작품에서 제가 조연출을 맡았는데, 촬영도 겸하기도 했어요.
처음엔 촬영 감독을 섭외해서 진행했어요. 제 학교 선배였는데, 장기적인 작품이고 환경이 어렵다보니 타지에서 온 스텝들과 일하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여름엔 촬영을 그 감독님이 하셨고, 겨울엔 제가 촬영을 맡아 진행했죠. 어떻게든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어간 작품이에요. 거제에서 처음 만들어진 장편영화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기억에 많이 남아요.

Q. 지금 감독님께서는 ‘거인로컬크리에이터협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거인로컬크리에이터는 어떻게 만들어진 단체인가요?
작년부터 거제지역의 <다큐멘터리 필름메이킹> 교육을 담당하고 있어요. 그 교육을 통해 거제에서 다큐멘터리나 영화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하시는 분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사실 수업보다는 여기서 만난 분들과 어떻게 연을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깊었어요. 그래서 협동조합이란 법인격의 회사를 창립해 계속해서 교류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나가고자 했어요. 지금은 5명의 조합원과 3~4명의 파트너, 40명이 넘는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이 되었어요. 단순히 촬영, 편집만 하고자 하는 기술 스텝들이 아닌 작가부터 조연출, 제작, 동시녹음 등 다양한 분야의 관심 있는 분들이 계셔요. 최대한 지치지 않게 끌고 가서 거제에 서도 영화 제작사를 하나 만들고 싶어요.(웃음) 수업을 진행하면서 수강생 분들이 카메라에 담아 오는 것들을 보면서 다큐멘터리가 결국 지역을 아카이빙 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기록한다는 게 이 지역에서 영화나 영상을 하는 사람으로서 의무로 다가오기도 했고요.
그래서 올해 <다큐멘터리 필름메이킹> 교육을 통해서 만난 수강생 분들과 <장승포: 다 품다>라는 작품을 함께 만들었어요.
거제 장승포의 역사를 담아내려 했어요. 한국전쟁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라는 배가 장승포에 도착한 이후 장승포에 피난민들이 들어오게 돼요. 약 2만 명의 피난민이 갑자기 몰려든 거죠. 그때 당시에 장승포 주민은 1만 7천여 명이었어요. 포로수용소가 있다고는 했지만 마을 주민 보다 많은 수의 인원이 몰려드니까 풀어야 할 숙제가 한두 개가 아니었을 거예요. 그럼에도 장승포 주민들은 피난민들에게 밥과 집을 내어주기도 했고, 마을에 정착할 때까지 많은 도움 을 줬다고 들었어요. 그때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어요. 장승포에서 피난민을 품은 사람들의 이야기요. 교육은 끝이 났지만, 아직도 담아낼 이야기가 많아 수강생 몇 분들과 함께 모여 조금씩 촬영 을 진행하고 있어요.
Q.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계속해서 바쁘게 지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데, 올해가 가기 전에 어떤 활동이 남아있나요?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믿기질 않네요.(웃음) 엄청 바쁘게 지낼 것 같아요. 지금 제작 하고 있는 다큐멘터리도 마무리하는 게 먼저 같아요. 그런 다음 연말은 아무래도 이때까지 해 왔던 사업을 마감해야 하는 시기다 보니 사업들 하나 둘 마감하며 지내지 않을까 싶어요.
Q. 인터뷰를 여기서 마무리하고자 하는데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지역에서 계속해서 남아 활동한다면 그게 하나의 뿌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잘하든 못하 든 언젠가부터 그 뿌리를 터서 지역에서 영화나 영상을 하고 싶은 학생들이나 개인들에게 우 리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더라고요. 영화를 넘어 더 다양한 매체들을 다루면서 지역 을 홍보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다양한 활동 하며 지역을 담아내는 감독 혹은 제작자, 한 단어로 로컬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