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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3-09-11
<오로라> : 삶의 극지에서김지연
부산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영화평론가
영화 곁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오로라>의 주인공을 보면서 세상의 많은 니나들 중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에 등장하는 니나를 떠올린 사람은 나만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크레딧이 올라갈 때 배우의 성명 ‘김니나’를 확인하며 동명의 배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연출자가 다른 이름이 아닌 ‘니나’를 이 영화의 주인공 이름으로 정했을 때, “삶의 한가운데”의 영향 아래 있었으리라는 주장은 여전히 거두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의 상황은 좀 다르지만 두 사람은 모두 그 어떤 비참하고 혹독한 순간에도 포기라는 선택지 없이 어떻게든 자신의 삶을 살아내려는 의지와 용기로 점철된 인물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인물의 지척에서 그를 시야에 두고 놓치지 않으며 줄곧 핸드헬드로 따라다닌다. 니나의 얼굴은 삶이 주는 피로함에 지쳐 있는지 모르지만 그는 영혼까지 팔아버리진 않았다. 거리를 유지한 채로 인물을 바라보고 있어도 카메라는 니나의 일거수 일투족, 그리고 스산한 내면의 풍경을 놓치는 법이 없다. 핸드헬드는 매순간마다 어지럽고 복잡하게 흔들리는 그의 마음과도 닮아 있다. 이를테면 빈 강의실의 모서리를 등지고 앉아 누군가 (다단계 물품 판매를 유도하기 위해서) 그를 불러내기를 기다리는 동안, 니나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다단계 판매로 사람들을 꾀어내는 강의실에서도, 이제 이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선배에게 이야기할 때도 다르지 않다. 그의 경제적인 형편 혹은 어머니의 병환, 그리고 양심의 가책 사이에서 그가 늘 머뭇거리고 있다는 것쯤은 극의 전개와 함께 짐작해볼 수 있는 사실이다.
선배는 그에게 점점 더 실력이 늘어난다며 좋아한다. 하지만 니나는 가짜 명품가방을 메고 성공한 커리어우먼인 척 하는 것도, 그 연기에 대한 사례금도 흔쾌하지가 않다. 어쨌든 자신에게는 직업이기에 성실하게 다단계 물건을 판매하는 데 임하지만 결정적인 순간들을 맞으면, 니나는 그 앞에서 진심을 보이거나 양심을 지키는 쪽을 선택해 버린다. 이를테면 혼자 사는 노인의 집에서도 이것저것 도와주다 말고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풀어져버린 니나는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다. 노인이 약값을 치를 때에도 지폐가 잔뜩 든 지갑을 내밀었지만 니나는 순간 몰려오는 유혹을 이겨내고 약값만을 챙긴다. 보호사가 나타나 다단계 판매란 사기라고 화를 내는데, 니나는 한마디 응수하지 못하고, 손에 쥐고 있던 지폐를 꼼짝없이 다시 빼앗기고 만다. 저항할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손이라는 신체의 일부는 중요한 매개다. 노인이 니나의 다친 손에 밴드를 발라주는 순간은 영화를 통틀어 처음으로 타인이 그에게 어떠한 의도도 없이 내민, 순수한 호의로 이루어진 손길이다. 이후에 노인은 보호사에게 다친 상처에 바르는 약을 부탁했었고, 그 약은 아직 손에 난 상처가 아물지 않은, 그리고 양심이라는 걸 가진 니나에게 전해져 그를 혼란하게 한다. 그 외에 영화에서 대부분의 손은 문제의 핵심인 돈이 이동하는 수단이다. 다단계 업체의 선배가 치사하게 건네는 손, 그렇게 내미는 돈을 받아야만 하는 구차한 손, 그렇게 받은 돈을 다양한 이유로 빼앗기고마는 무력한 손, 물건을 팔려고 누군가의 담 너머로 내밀거나, 내팽개친 물건들을 주워담아야 하는 손, 결국에는 지갑을 훔치는 손, 그러나 비난할 수만은 없는 어떤 삶.
현실은 차가운 법이다. 가난은 양심을 챙길 수 없게 사람을 궁지로 내몬다. 형광등이 나가버리고 새 것으로 갈아끼워 보았지만 그마저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안정기가 문제라고 한다. 어쩌면 삶이 이럴까. 손바닥만한 방을 밝힐 한줌 빛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건 너무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오로라는 그럴 때, 다시 말해서 니나가 현실에 패해 깊이 침잠해버리게 되는 가장 어두운 순간에 나타난다. 영화에선 두 번이다. 다단계 강사를 그만두겠노라고 통보는 했지만 그 이후의 생활이란 얼마나 망연한 것인지.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니나는 캄캄한 집안에서 새어 나오는 오로라를 보았다. 두번째 오로라는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다. 불순한 의도를 품고 찾아간 독거노인의 집에서, 쓰러진 노인을 발견하고 의도치 않게 니나는 그의 목숨을 구하게 된다. 또한번 돈을 훔칠 기회가 오고, 이번에 니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완벽한 성공인가. 복잡한 그의 마지막 얼굴에서 우리는 세상이라는 곳, 사람살이의 얄궂음을 읽는다.
침착하게 한 켜 한 켜 쌓아올린 이 영화가 펼쳐내는 드라마는 박형진의 다른 단편들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오로라는 섣부른 희망의 빛이 아니라 지금 이 곳, 이 삶의 좌표가 극지에 다다라 있다는 것만을 알려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영화는 불행과 슬픔, 혹은 절망을 먹이로 삼아 전진하지도 않는다. 인물의 곁에 머물러 살뜰히 그를 지켜보는 시선 안에 자리한 건 명백히 연출자의 정직함과 성실함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오로라는 운이 따라야 볼 수 있는 신비한 빛이기도 하다. 그러니 멸시 받아야 할 사람은 없고, 니나의 삶은 끝나지도 최악이지도 않다. <오로라>는, 우리들로 하여금 기꺼이 그렇게 믿고 싶어지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