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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크리틱] <창밖은 겨울>:순환하며 흘러가는 것이 결국 삶이기에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3-08-31

<창밖은 겨울> : 순환하며 흘러가는 것이 결국 삶이기에

​김지연

부산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영화평론가

영화 곁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진해(鎭海)라는 지명의 뜻을 읽는다. 행정구역상 창원시에 속해 있는 것, '구(區)' 단위의 지역이라는 걸 이제 알게 되었다. 연출자 이상진이 진해 출신이리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게 해볼 수 있다. 아니면 그는 적어도 이 인근에서 오래 살았을 것이다. 벚꽃으로 이미 유명한 지역인데, 그런 곳에서 일어나는 영화의 시간이 늦가을과 겨울 사이이기에 봄 아닌 다른 계절에도 이곳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일 것이라 생각해볼 수 있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영화의 초반, 버스가 운행하는 경로를 따라서 이어지는 곳곳의 몽타주를 보면 누구라도 거기에 흐르는 온기를 감지한다. 그런 것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객의 시선으로는 좀체 구현해내기 어렵다. 그곳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만 가능한 장면들이다. 

게다가 이 영화엔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이 꾸려가는 일상생활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진해는 단순하게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의 역할에만 머물지 않고 인물만큼이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영화 속 진해는 아직 산의 완만한 능선이 시야에 막힘없이 이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소도시다. 단층집들과 저층 건물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인 8, 90년대의 정취가 숨 쉰다. 해변도로를 따라 가장자리에 작은 고깃배들이 정박했고, 산 중턱 도롯가에는 봄에 벚꽃이 흐드러질 나뭇가지들이 얽혀있다. 브랜드의 AS 센터가 아닌 전자제품 수리점도 아직 남아있다. 고층빌딩과 극도의 효율 위주로 조직되는 현대의 첨단도시가, 이곳에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대형마트가 없지는 않을 텐데도 장이 서는 날이면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가야 제대로 살림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고, 버스터미널의 손님들도 키오스크 대신에 매표소에 줄을 선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려고 카페에 가는 것이 아니라 자판기에서 달달한 믹스 커피를 뽑아 마시며 벤치에서 짧은 휴식을 즐기는 모습도 오래간만에 보는 직장의 풍경이다. 그렇게 느리게 흐르는 시간과 그 안에서 가만히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의 정취가, 영화 전반을 끌고 가는 동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석우(곽민규)는 영화연출의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났다가 돌아와서 버스기사로 일하고 있다. 회사의 동료들은 어딘가에서 촬영하는 것만 보고 와도 그에게 뭔가 아는 게 없는지 물어보고, 그가 몸담았던 '독립영화'가 독립군 영화인지 빨갱이 영화인지를 궁금해한다. 거기에 관여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모를 만한 일들이고, 말을 건네는 사람들의 태도엔 악의가 없다. 관객으로 하여금 웃음은 유발하되 이는 그들을 희화화 하는 방식이라 여겨지지는 않는다. 또 그것을 지역이라는 이유로 생긴 해프닝으로 간주할 수만은 없다. 독립영화가 주류의 산업과 문화는 아니기에 그곳이 어디든 관심 없던 이들에게는 제대로 인식되지 않을 소지가 다분해서다.

앞서 말했듯 진해, 바꿔말하면 고향 혹은 지역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고 했다. 사람들이 신속하게 체화하지 못했을 뿐 세상이 변해가고 있다는 걸 그들 모두 알고 있다. 나이가 지긋한 석우의 동료 중에는 여전히 젊은 여성 직원에게 “미스양”이라고 부르다가 당사자로부터 정정해서 이름을 불러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한다. 다른 동료가 얼른 그 말을 받아 “영애양”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특별히 비하하려는 뜻은 없었어도 그렇게 들릴 수 있는 시대라는 걸 지각하고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혹은 아무리 인색하게 말해도 그 순간 결례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부장 또한 영애(한선화)에게 사람들이 다 보니까 담배를 다른 데서 피우라고 주의를 주지만 당신은 여성이니까 라는 말은 괄호 안에 넣었을 뿐 발화하지는 않는다. 그런 말이 부당한 시대이고, 상대에게 불편감을 줄 수 있는 걸 본인도 알고 있어서다. 그러니 영애가 이유를 물었을 때 유니폼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영애 역시 부장의 뜻을 파악했으므로 그와 더 이야기하려 하지 않고 대충 수긍해버린다.

그런데 최신의 결혼관인 졸혼까지 다루는 이 영화에서, 영애를 짝사랑하는 최기사의 묘사에 대해서만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는 느닷없이 나타나서 “제 꽃을 받아주십시오” 하고 과장된 말투와 몸짓으로 꽃다발을 내민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이) 두더지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참을 수 없다고 한다. 물론 이를 두고 짝사랑에 빠진 어수룩하고 서툰 남성의 몇몇 전형 가운데 하나를 구현한 것으로 이해해볼 수는 있다. 느닷없는 고백에 곤란해하면서 최기사에게 참으라고 응수하는 당찬 영애나 한껏 눈치를 보면서 그 상황에 살금살금 가로질러 지나가려는 석우의 모습이 최기사와 크게 대비를 이루며 웃음을 유발하는 데엔 효과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떤 곳들에서는 이미 없어져버린 따스한 정취를 펼치고, 그 안에 평범한 사람들을 세워두는 이 영화가, 고전적·낭만적 사랑의 전형을 추구하더라도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더 그럴듯한 인물의 형태를 그렸으면 좋았겠다. 지역에서 만드는 영화가 지역의 인물을 그릴 때마저도 소위 말하는 시골사람, 혹은 순진한 총각의 전형에 쉽게 동의한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는지.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석우와 영애는 일견 닮았다. 석우는 버스 기사가 된 지금은 예전에 자신이 만든 영화를 가족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영화 일을 할 때 알게된 사람들을 만나거나 관련 소식지를 받는 것마저도 내켜하지 않는다. 영애는 학창시절에 탁구선수로 활동했지만 지금은 버스 회사의 매표소 직원이다. 회사에는 탁구장이 있지만 그들은 탁구를 치지 않아서 사람들이 실력을 알지 못한다. 정해진 시간과 노선을 따라서 움직이는 버스는 순환하고, 목적지와 요금이 정해져 있는 매표의 일은 순환을 만드는 반복이다. 두 사람은 석우가 mp3 플레이어를 주워 유실물 보관소에 맡기고, 담당자인 영애에게 수시로 찾아가 습득물의 행방을 확인하면서부터 가까워진다. 영애는 그건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척 버리고 싶은 물건일 거라고 주장하며 mp3 플레이어에 집착하는 석우를 선뜻 이해하지 못한다. 

이제는 지나간 시절의 유물이 되어버린 이 습득물은 두 사람 각자의 과거 어느 시점에 묻어둔 기억을 소환하는 매개의 역할을 한다. 석우에게는 전 애인과의 추억을 길어올리는 계기로 작동하고, 영애는 자신이 맞다는 걸 확인하고자 석우의 여정에 동행 하면서 자신이 탁구라켓을 버렸던 일을 떠올리게 된다. 담장 너머까지 느껴지는 어느 집의 화목함이 부럽고 내일도 훈련해야 하는 제 처지가 서러워서 그 집에다 라켓을 던져 버리고서는 잃어버렸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니 습득물을 두고 잃어버린 척 하는 거라는 말은  과거의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기억이란 버리고 싶어도 버려지지 않고 뇌수에 달라붙어 잠자코 있다가 불현듯 나타나서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 두 사람이 수리점을 전전하는 일은, 그들이 과거를 과거의 자리에 남겨둘 수 있게 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석우는 전 애인이 건드려서 무한히 움직임을 반복하고 있는 장식품을 멈춰세운다. 고향에 돌아온지 꽤 된 모양이지만 이제야 짐을 정리하고, 가족에게 보여주지 않던 자신의 영화를 함께 본다. 전 애인을 만나 궁금했던 것들을 묻기도 한다. 영애는 과거의 기억에 붙들려 그에 끌려가지 않을 작정이다. “후회인지 미련인지 궁금하니까” 그 기억들과 마주보는 일을 실행하기 위해 탁구를 진지하게 쳐보려는 마음을 먹는다. 

이제 그들에게 과거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버린 다른 수많은 날들 중의 하나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전 애인에게 답을 들은 석우는 더이상 mp3 플레이어를 수리해 재생 목록을 확인하고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아야할 이유가 없어졌다. 하지만 영애가 그걸 찾아옴으로 인해 mp3 플레이어는 앞으로 이어질 새로운 관계의 상징으로 기능하게 된다. 삶의 의미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두 사람은 지금을 살고, 그들의 내일에 설레어 한다. 계절이 지나가고 버스가 운행하듯 순환하며 흘러가는 것이 삶인 것 같다. <창밖은 겨울>이 관객의 귓가에 은은하게 건네오는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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