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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나부야 나부야>: 느리게, 오래 보기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1-11-01


<나부야 나부야>: 느리게, 오래 보기


김나영(영화평론가)


<워낭소리>(2009)와 같은 작은 독립 다큐멘터리의 흥행 성공 이후 한평생을 시골에서 살아온 이들의 노년의 삶을 다룬 비슷한 소재의 작품이 독립 다큐멘터리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며 적지 않게 극장 개봉하고 있다. 하지만 개중 많은 수의 작품이 현실을 살아가는 개별 인간들의 생생한 삶을 담아내는 것보다 단지 흥미 본위의 소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몇몇 작품들은 도시의 삶과 대비되는 시골에서의 삶에 대한 호기심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다큐멘터리의 대상이 되는 인물들을 일종의 구경거리 혹은 눈물을 위한 이야깃거리처럼 타자화하기도 한다.


최정우 감독의 <나부야 나부야>는 경남 하동군 화개면 어느 마을에 78년을 함께 살아온 9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사계절의 흐름과 함께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로, 앞서 이야기한 ‘시골’과 ‘노년’이라는 키워드로 묶을 수 있는 작품군의 범주에 속하는 작품이다. 특별히 유사한 소재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를 연상케도 하는 <나부야 나부야>에서 유심히 보게 되는 것은 <나부야 나부야>가 여타 비슷한 소재의 작품들과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어떤 점에서 더 성공적인지 혹은 아쉬운 작품인지와 같은 지점들이다.


<나부야 나부야>와 비슷한 소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특징 중 하나는 이른바 신파다. 시골에서 때 묻지 않은 삶을 사는 부부의 변하지 않는 사랑과 그러나 피할 수 없이 다가오는 이별 이야기만큼 눈물을 자극하기 좋은 소재도 없어 보인다. 물론 신파 자체가 반드시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장르에 대한 도전적인 실험을 하는 것이 아닌 일반적인 경우라면, 극영화와 달리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관객의 눈물을 자극하기 위한 신파는 다큐멘터리에 불필요한 조작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관련한 대표적인 사례로 영화평론가 허문영이 지적하기도 한 <워낭소리>의 편집을 들 수 있다. 허문영 평론가는 <워낭소리>가 시골장에서 천대받는 노인과 소의 상황을 보여준 후 소의 눈물이라는 감정적 사건을 편집을 통해 보여준 것에 관해 문제를 제기한다. 영화가 이전까지 장면들을 편집해온 방식이 극영화의 방식과 유사했기(가령, 서로 다른 시간에 촬영된 대화 장면을 한 대화 장면 안에 편집시키기도 한다) 때문에 소의 눈물을 편집한 것 역시 관객의 눈물을 자극하기 위한 인위적 편집이 아닌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런 형태의 신파는 허문영 평론가의 표현대로 인간 삶에 내재한 “심원한 감정을, 상투적인 인과의 서사로 해소해버린다.”(「씨네21」 692호)


 

<나부야 나부야>의 특징이라면 영화에 이와 같은 인위적인 편집뿐만 아니라 카메라 밖에서의 감독의 개입이나 흔히 사용되는 내레이션의 사용조차도 없다는 점이다. 또, 두 사람이 함께 한 시간만큼 충분한 양이 있었을 법한 두 사람의 옛 사진을 제시하는 자료 화면이나 옛이야기를 듣는 인터뷰도 없다. 그 자리를 대신 메우고 있는 것은 계절이 변화하는 모습을 담아 표현한 무심한 시간의 흐름과 서로를 아끼며 살아가는 지금 현재 두 사람의 모습이다.


또, 영화는 할머니가 없는 집으로 딸과 함께 돌아온 할아버지의 모습을 담은 영화 초반을 제외하면 다른 가족의 모습도 배제하고 노부부의 모습만 카메라에 담는다. 특별한 사건이나 큰 갈등 없이 흘러가는 노부부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란 조급증 없이 영화는 그저 이들의 느린 생활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애쓴다. <나부야 나부야>는 두 사람 사이에 특별한 갈등이 없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만들고픈 유혹에 쉽게 빠지지 않는다.


그 점에서 <나부야 나부야>가 할머니의 부재를 다큐멘터리가 시작하자마자 배치한 선택은 할머니의 죽음을 서사적 클라이맥스로 소비되지 않도록 애쓴 흔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감독은 사건이 일어난 시간 순서대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서로를 아끼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다음 할머니의 죽음을 배치할 수도 있었을 테고, 그랬다면 관객으로부터 눈물을 끌어내기도 훨씬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할머니의 장례식 장면조차 삽입하지 않으면서 할머니의 죽음이 서사의 한 부분이 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계절의 변화로 미루어 보아 오랜 시간 두 사람의 곁에서 촬영했을 감독은 할머니의 죽음에 이와 같은 방식으로 예의를 갖추고 있다.



<나부야 나부야>처럼 시골에서 한평생을 살아온 이의 노년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 중 하나는 ‘시골’과 ‘노년’을 다룬다고 할 때 흔히 떠올리기 쉬운 것이다. ‘시골’과 ‘노년’은 이른바 <인간극장>과 같은 TV 다큐멘터리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TV 다큐멘터리의 형식과 어떻게 다르고, 달라야 하는가. 둘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면 TV 다큐멘터리를 굳이 영화관까지 찾아가서 볼 이유가 있을까? 영화는 시청 중에도 언제든지 채널을 마음껏 돌릴 수 있는 TV 프로그램과 달리 관객에게 조금 더 인내심을 요구할 수 있다. TV가 관객의 흥미를 끌기 위해 작은 사건도 크게 보이도록 편집과 음악 사용을 고심할 때(<인간극장> 특유의 내레이션과 음악을 떠올려보라) 영화는 카메라에 담기는 모습을 관객에게 조금 더 끈질기게 바라보도록 요구할 수 있다.


<나부야 나부야>가 TV 프로그램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도 여기에 있다. <나부야 나부야>는 TV에서였다면 시청자가 리모컨을 들어 채널을 돌리기 전에 편집했을 노인의 느린 움직임을 끈기 있게 보여준다. 관객은 조금만 발을 잘못 내디뎌도 금방 부러질 것처럼 마른 할머니의 다리가 한참 동안 어딘가로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된다. 마치 무성한 수풀을 헤치는 것처럼 지팡이로 밭의 작물을 헤집던 할머니의 행동이 빨래 하나를 걷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곧 드러난다. 노인의 움직임에 어떤 수식을 붙이지 않고서도 영화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노년의 삶의 고단함과 인간 생명력의 위대함을 함께 보여준다.


<나부야 나부야>가 78년을 함께 살아온 한 부부의 이야기라는 사실도 이 움직임이 주는 울림을 크게 만든다. 노부부는 때때로 말을 통해 서로를 향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들이 힘겹게 해 나가는 일상적인 집안일에도 서로를 향한 마음이 담겨 있다. 할머니보다 조금이라도 움직임이 나은 할아버지가 빨래, 청소부터 요리, 설거지에 이르는 집안일 모두를 해나가고 할머니는 매 순간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와중에 빨래 하나라도 걷기 위해 불편한 몸을 움직이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서로를 생각하는 두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나부야 나부야>를 보면서 무엇보다 크게 다가오는 것은 이와 같은 두 사람의 변치 않는 마음이다. 할머니는 청력이 점점 더 나빠져서 더는 할아버지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끈기 있게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오래 사는 것보다 오래 사랑하는 것이 더 어렵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유형의 사람을 골라서 만나고 쉽게 헤어질 수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작은 경이감을 느끼게 해 준다. 부부가 서로를 향한 마음을 “정이 두텁다.”라고 표현한 것처럼 두 사람의 마음의 두께는 노부부가 함께 한 시간만큼 두터워 보인다.


감독이 편집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을 순간은 <나부야 나부야>의 마지막에 등장한다. 할머니가 떠난 노부부의 집에 홀로 앉은 할아버지의 얼굴 위로 할머니의 생전 목소리가 보이스-오버 되고 이후 풀숲에 앉은 나비를 교차 편집한 순간이 바로 그것이다. 이 순간은 마치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나비에 할머니의 모습을 투영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감독이 짐작해 편집을 통해 표현한 것이기도 하지만 감독 자신의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오랜 시간 노부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온 감독이 이들에게 보내는 작은 애도의 표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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