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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1-05-16
<오장군의 발톱> : 오장군이 목격한 전쟁의 민낯
전은정(프랑스파리8대학 영화전공)
<오장군의 발톱>은 작은 시골마을 까치골에 사는 오장군이라는 이름을 가진 순박한 농부의 참전 이야기다. 오장군이 사는 동쪽나라는 서쪽나라와 오랜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어머니, 아내 꽃분이 그리고 자신이 기르는 소 먹쇠와 감자밭이 세상의 전부였던 오장군은 행정착오로 잘못 된 징집을 당하고 전쟁터로 나간다. 오장군은 전시의 군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총도 쏠 줄 모르는 겁 많은 관심병사가 된다. 훈련소에서 총기 오발 사고를 내고 영창에 가게 된 오장군은 손톱과 발톱을 담은 유서를 남기고 전방에 배치되면서 전쟁의 참상을 생생히 겪게 된다. 오장군의 순진함을 눈 여겨 본 동쪽나라 장군은 그를 서쪽나라에 포로로 잡히게 하고 역정보를 흘려 공격을 무산시키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정보원으로 오인 받은 오장군은 서쪽나라에 의해 처형을 당하고 만다. 오장군의 순수함은 전쟁을 위한 도구로 이용된 후 버려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은 계속된다.
<오장군의 발톱>의 주제는 명확하다. ‘오장군’이라는 시골 청년을 통해 전쟁의 참상과 비인간성을, 그리고 어떠한 국가의 실수도 인정하지 않고 개인을 한낱 도구로 전락시키는 국가주의를 고발하는 반전영화다.
이 영화는 박조열 작가의 동명 희곡 <오장군의 발톱>(1974년)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작가의 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요소가 강한 작품으로 분단된 한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평화에 대한 갈망을 담았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남한으로 온 작가가 고향인 북쪽과 싸워야 했던 부조리한 현실이 이 작품을 쓴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가 회고하듯이 이 작품은 전쟁에 나간 오장군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 고향에 대한 사랑’을 녹여내고 있다.1)
희곡이 쓰여진 한국의 1970년대는 군부독재 하에 전쟁의 공포와 북한에 대한 적대감이 팽배한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 희곡 <오장군의 발톱>은 전쟁의 폭력성을 우화적, 상징적으로 엮어냈지만 발표 당시 금지 되었고 1989년에 들어서 첫 상연이 가능했다. 이후 이 희곡은 호평 속에 꾸준히 연극무대에 올랐고 연극배우이기도 했던 김재한 감독이 처음으로 스크린으로 옮겼다. 감독은 원작 희곡의 동화적 분위기와 기본 구도에 충실하면서 새로운 인물과 이야기로 내러티브를 강화하고 전쟁의 민낯을 탐구한다.

반전 메세지는 영화 시작부터 강조되며 전반을 관통한다. 참전을 독려하는 확성기 소리를 시작으로 길게 늘어선 징병줄을 따라 들어간 징병소 안에는 또 하나의 순박한 농부 김첨지가 두 번째 징집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아주 단호하다. ‘국가는 실수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다 호명을 받는 오장군의 근심스런 얼굴은 불안한 미래를 예고한다.
오장군의 징집이 행정착오에 의한 것이라는 설정은 개인의 정체성이 말살되는 전쟁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동명이인인 아랫마을 부잣집 오장군 대신 전쟁터로 나가게 된 가난한 농부 오장군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 당한다.
어머니와 아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장군의 징병 철회는 요원하기만 하고 남의 명의를 도용해 사기 입대를 했다는 혐의까지 받는다. 그리고 오장군 앞으로 온 군사우편은 전해지지 못한 채 동쪽나라 장군에 의해 불 태워진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던 한 시골청년은 전쟁의 희생양으로 스러져 가고 그의 정체성은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순박하다 못해 어리숙하게도 보이는 오장군은 역설적이게도 전쟁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인물이다. 희곡에서는 건장한 시골청년으로 묘사된 오장군이 영화에서는 다소 연약해 보이는 사색적 인물로 재해석되었다. 그는 모두가 전쟁의 소모품이 되고 서로를 향해 겨눈 총부리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전쟁의 이유는 무엇이고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그리고 전쟁의 승리가 행복을 보장되는지를.
희곡과 차별되는 인물 중 하나인 김첨지는 오장군과 더불어 전쟁의 폭력성을 부각시키는 역동적 인물이다. 두 번의 징집을 당한 중년의 김첨지를 통해 동쪽나라와 서쪽나라의 전쟁이 얼마나 소모적이고 지리멸렬한지 짐작할 수 있다.
오장군이 꿈 속의 가족과 대화하는 다소 정적인 인물이라면 김첨지는 외부와 관계를 맺는 인물이기도 하다. 비록 좌절될지라도 부당한 징집에 항의하고 서쪽나라로 탈영까지 하는 적극성을 보이기도 한다.
그는 모두가 영광스러운 죽음을 말하는 전쟁터에서 ‘전쟁에서 제일 중요한 건 살아남는 것’이라며 유일하게 삶을 강조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첨지가 서쪽나라에 포로가 된 병사를 찾아 온 모녀를 보살피기도 했지만 자신의 손에 의해 그들이 죽음을 맞게 되는 장면은 전쟁의 아이러니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전쟁으로 인한 인간성 파괴와 잔혹함은 화해되지 못하는 시선으로도 드러난다. 수색 중 서쪽나라의 습격을 받고 대피하던 오장군과 선임 고상병은 폐허가 된 성당에서 부상당한 서쪽나라 형제 병사를 발견한다. 오장군은 피를 흘리는 동생 병사를 돌보는 반면 고상병과 형 병사는 서로 총을 겨눈 채 대치한다. 오장군의 중재로 총은 내려지고 평안한 밤을 보내는 듯 하지만 결국 고상병은 무방비 상태인 두 형제를 죽이고 만다. 맞선 시선은 한쪽의 죽음으로 마무리 되고 허망한 오장군에게 고상병은 적군을 죽여야 하는 전쟁터의 규율을 외친다.
또 하나의 엇갈린 시선은 오장군과 진짜 장군이다. 당번병이 된 오장군이 동쪽나라 장군의 어깨를 주무르면서 대화를 나눈다. 오장군이 묻는다. ‘이 싸움을 이기면 우리 모두 행복해지나요 ?’ 진짜 장군이 답한다. ‘나라를 위해 싸우지 개인을 위해서 싸우는 게 아니다’. 두 사람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지만 타협이 불가능한 마주치지 못하는 시선이다. 평화에 대한 갈망은 목적을 알 수 없는 전쟁 앞에서 해소되지 못한다.
오장군이 반복해서 불러내는 꿈속의 가족은 전쟁터라는 극한의 현실과 강한 대조를 이룬다. 행복은 어머니와 아내를 만나고 밭일을 걱정하는 오장군의 꿈 속에서만 존재한다. 고향으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리는 오장군의 소박한 바램은 전쟁이라는 현실과 공존이 불가능하다. 가장 하찮게 보이는 ‘오장군의 발톱’만이 오장군 대신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김재한 감독이 우화적이고 동화적 요소가 강한 원작의 묘미를 잃지 않고 꿈과 현실을 오가는 오장군의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은 역력하다. 오장군이 가족을 만나는 꿈의 세계로 이끄는 장치로 풍경소리를 택한 것도 흥미롭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장군의 발톱>은 연극의 경계를 벗어나 영화적으로 더 나아가지는 못한 점도 보인다.
유명한 희곡을 영화화 하는 것은 양날의 검과 같을 것이다. 원작의 탄탄한 플롯으로 안전성을 보장하는 반면 이것을 영화라는 다른 예술 매체로 옮길 때의 정당성이 확보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타당성이 스크린을 통해 실현될 때 영화는 설득력을 가지고 공감대는 확장된다.
영화가 희곡을 차용할 때 감독은 원작의 연극성 살리기에 충실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만의 유일한 영화적 언어를 구축함으로써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 낼 것인가를 선택하고 연극에서 발견할 수 없는 영화로서의 효력을 증명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오장군의 발톱>의 영화적 위치는 다소 모호하다.
연출의 대부분은 배우들의 대사와 연기에 기대어 있고 영화적 상상력을 제한되고 있다. 인물과 사건에 다가갈 수 있는 거리 조정과 시간을 배제한 내러티브 전개는 시퀀스 간의 충돌을 일으키면서 삐걱거리기도 한다.2)
앞서 언급했듯이 꿈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풍경소리는 하나의 영화적 아이디어가 되지만 전쟁터와 대비되는 영화적 이미지로의 재현보다는 연극적 효과에 머물러 있다. 인물을 겉도는 듯한 카메라는 이미지의 입체성을 살리지 못해 단조롭고 밋밋하다. 전반부, 훈련소에서 사격훈련을 하던 오장군이 상상 속에서 아내 꽃분이를 만나는 장면은 후반부, 벌판에 선 총살 직전의 오장군에게 꽃분이가 달려오는 장면으로 연결되지만 이들을 멀리서 바라보는 카메라는 상황을 더 파고 들어가지 못함으로써 풍경으로 머무는 인상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흔한 전쟁 영웅 서사를 지양하면서 미니멀리즘 연출 시도로 반전영화의 가치를 얻는 것에 주목된다. 전쟁영화의 쟝르적 특징 중 하나인 인물간의 갈등과 해소나 군인들의 동지애 등에 집중할 경우 필연적으로 전쟁의 참혹함보다 전쟁에 대한 동경적 시선이 나올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선한 의도도 불행으로 귀결되어 버리고 어떠한 인정도 허락되지 않고 비극으로 치닫는 <오장군의 발톱>에서 반전영화에 대한 감독의 의지가 읽힌다.
마지막으로 <오장군의 발톱>은 영화 외적인 언급이 필요하다. 이 영화가 지역독립영화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한 일련의 시도들은 고무적이다. 제작사 상남영화제작소에 따르면 이 영화는 시민이 제작자로 참여한 모범적 사례로 꼽힌다. ‘십시일반제작펀딩’프로젝트로 1000 여명의 시민이 제작비를 보탰을 뿐만 아니라 엑스트라로 직접 참여도 이뤄졌다고 한다. 이러한 영화 만들기 방식이 지역독립영화의 명맥을 유지하고 나아가 지역 예술문화활동의 기폭제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오장군의 발톱>이 부족한 재원으로 인해 영화의 질적 공백을 메우지 못한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있지만 감독이 강조했던 ‘지역에서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영화 만들기’는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내면서 소정의 의미를 획득했다.
1)<연극 ‘오장군의 발톱’작가 박조열 « 평화롭게 산다는 것, 귀중함 알았으면... », 김준엽, 국민일보 2010/03/28
2)원작과 비교해 보면 넓은 벌판에서 오장군이 밭일을 하며 황소 먹쇠와 교감을 나누는 도입부가 이야기의 본성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영화에서는 생략되었다.